요즘 디자인에서 ‘향수(노스탤지어)’가 중요한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서 안정감을 찾는데, 이런 심리가 디자인에도 반영되는 거죠. 그렇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향수 트렌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왜 이렇게 주목받는지, 그리고 과거의 디자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일상 속으로 돌아온 추억의 감성
최근 몇 년 동안 사람들은 옛날 감성을 담은 디자인에 더욱 끌리고 있습니다. 패션, 가구, 브랜드 로고, 음악까지 우리 주변 곳곳에서 ‘향수’가 반영되고 있죠.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익숙한 것이 주는 안정감이 커지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많은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친숙한 디자인을 활용해 편안함을 전하려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에서도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과거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디자인
디자이너들은 마치 골동품 수집가처럼 옛날 로고, 빈티지 책, 오래된 포스터 같은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우리가 자주 보는 폰트 중에도 오래된 책이나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엽서의 글씨체를 참고한 것들이 많죠. 이렇게 과거의 디자인 요소를 되살리는 과정은 옛것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됩니다. 이런 경향은 로고, 패션, 인테리어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납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크리에이티브 타입 디렉터 톰 폴리(Tom Foley)가 만든 Cotford라는 폰트입니다. 그는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이 익숙한 것에서 위로를 찾던 시기에 이 폰트를 디자인했는데요. Cotford는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친숙한 것이 주는 따뜻함을 강조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빈티지 스타일, 왜 다시 인기일까?
빈티지 스타일은 폰트 디자인뿐만 아니라 가구, 인테리어, 패션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팬데믹 동안 사람들은 오래된 물건을 찾고 되살리는 과정에서 위로를 얻었죠. 인스타그램과 Depop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 덕분에 이런 흐름은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패션 업계에서도 중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요. 현재 중고 패션 시장은 360억 달러 규모로 커졌으며, ThredUp에 따르면 2025년에는 패스트 패션 시장보다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값싸게 대량 생산된 옷보다 개성 있고 지속 가능한 중고 패션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죠. 게다가 팬데믹으로 인해 새 제품 배송이 늦어지면서,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중고 거래가 더욱 인기 있는 선택이 되었습니다.
빈티지 아이템이 기억을 불러오는 이유
사진작가 타일러 하우헤이(Tyler Haughey)는 빈티지 아이템이 우리의 기억과 경험을 더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기억은 처음엔 선명하고 친숙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흐려지고 마치 꿈처럼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설명하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빈티지 스타일에 끌리는 것입니다. 70년대 감성을 담은 둥글고 부드러운 글씨체, 해변 풍경 사진, 중고 데님, 골동품 같은 것들은 단순한 옛 물건이 아니라, 과거의 순간을 다시 떠올리고 그때의 분위기를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개인적인 향수 경험이 없더라도, 디자이너들은 익숙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서체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Cooper Black 스타일의 부드러운 세리프 글씨체인데요. 이른바 ‘소프트 서브’ 세리프 폰트로 불리는 이 스타일은 최근 Chobani, MailChimp, Meridian, Dunkin’, Burger King 같은 브랜드들이 리브랜딩할 때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폰트는 부드러운 곡선과 밝은 색상을 활용해 브랜드를 더 친근하고 유쾌하게 보이도록 만들죠.
디자인에서 향수를 활용할 때의 어려움
과거의 디자인을 다시 활용하는 것은 단순히 복고 감성을 살리는 일이 아닙니다. 그 디자인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죠. 모노타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찰스 닉스(Charles Nix)는 향수를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전 디자인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동안, 그 시대에 존재했던 성차별, 인종차별, 사회적 불평등 같은 문제들을 간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닉스는 디자이너들이 옛 디자인을 다시 사용할 때, 단순히 멋있어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어두운 역사까지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과거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활용하되, 당시의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따뜻한 디자인 요소를 어떻게 되살릴까?
디자이너들이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과거의 친숙하고 따뜻한 디자인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그리고 “그 시대의 아픈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함께 인정할 것인가?“입니다. Vocal Type의 창립자 트레 실스(Tré Seals)는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풀어낸 인물입니다. 그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서 영감을 받아 폰트를 디자인하며, 시민권 운동가인 Marsha P. Johnson, Martin Luther King, Bayard Rustin 등의 이름을 딴 서체를 만들었습니다.
흑인 디자이너로서 실스는 디자인 업계에서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초반에는 소외감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서체 디자인이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역사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죠. 이 깨달음이 그를 Vocal Type을 통해 의미 있는 폰트 디자인을 만드는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Black Lives Matter 벽화, 시위 포스터, 박물관 전시, 사회 정의를 지지하는 단체들의 브랜드 디자인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실스는 자신의 디자인이 업계의 다양성을 넓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디자인에서 향수가 주는 긍정적인 힘
예전에는 향수를 병처럼 여기기도 했지만, 잘 활용하면 디자인에서 따뜻함과 친숙함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찰스 닉스는 이를 ‘소울 푸드’에 비유하며, 힘든 시기에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진정한 발전이란 단순히 과거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과거의 좋은 점을 바탕으로 미래를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결국, 디자인에서 향수를 활용할 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복고풍 스타일을 따라 하기보다, 역사적 요소를 제대로 이해하고, 당시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지금 시대에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디자인은 더 포용적이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