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밀러의 수상작: 타이포그래피로 음악을 표현하다

타이포그래피의 매력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소통의 방식 자체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에요.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조용하게, 혹은 일부러 어긋나게 표현할 수도 있죠.”

런던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이자 아트 디렉터인 **휴 밀러(Hugh Miller)**를 만나 그의 수상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2024년 프레다 색(Freda Sack) 상을 받았는데, 이 상은 국제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협회(ISTD, International Society of Typographic Designers)가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작품에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입니다.

ISTD 어워드는 글자 디자인과 배치를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우수한 디자인을 선정합니다. 올해는 밀러의 작업이 그중에서도 특별히 주목받았는데요. 그의 디자인 철학과 이번 수상작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타이포그래피의 힘

타이포그래피는 창작자와 관객이 복잡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휴 밀러가 디자인한 SO:LO의 앨범 At the End of the World, Plant a Tree의 레코드 슬리브는 이런 역할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최근 우리는 휴 밀러와 만나 이 디자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직접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창작 과정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디자인과 인쇄 기법에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 그리고 창의적 직관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들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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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든 특별한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휴 밀러에게는 첫 레코드 슬리브 디자인이었고, SO:LO에게는 첫 번째 비닐 앨범이었습니다. 두 아티스트 모두에게 의미 있는 작업이었죠. 디자인 과정은 SO:LO의 음악과 앨범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깊이 이해하는 대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토론하면서,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고민했어요.” 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음악을 하나의 시각적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었죠.” 그는 앨범의 몽환적이고 풍부한 사운드를 잘 담아낼 강렬한 비주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SO:LO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경험한 한 장면이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든 날이 있었는데, 그 광경이 블레이드 러너 같은 SF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고 합니다. 이 강렬한 경험은 앨범 전체의 분위기에 반영되었고, 휴는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에 식물과 꽃 같은 자연적인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앨범이 담고 있는 환경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디지털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더 생생하고 촉각적인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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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디자인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특별한 점은 SO:LO의 몽환적인 음악을 그대로 시각적으로 구현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휴 밀러는 금속성 소재, 포일, 디보싱(음각 처리) 등 다양한 인쇄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 요소들은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연광과 상호작용하면서 텍스트가 반짝이거나 흐릿해지는 효과를 만들어, 음악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금속성 소재는 색감이 선명하면서도 빛에 따라 다르게 반사돼요. 그래서 텍스트가 순간적으로 흐려졌다가 다시 또렷해지는 재미있는 효과가 생기죠.” 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자연광이 디자인에 영향을 주는 점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빛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이도록 작은 디테일을 넣었어요. 자연광이 디자인의 일부가 되는 게 좋더라고요.”

이처럼 휴의 디자인은 단순한 앨범 커버를 넘어, 공간과 빛에 따라 변화하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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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로 표현한 예술

이 프로젝트에서 타이포그래피는 단순한 글씨가 아니라,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적 요소로 활용되었습니다. 휴 밀러는 앨범 커버 디자인을 위해 MuirMcNeil의 Two Bit 폰트를 선택했는데, 여러 가지 실험적 디자인을 테스트한 끝에 최종 결정했습니다.

그는 음악의 질서 있는 구조와 자연스러운 흐름을 글자로 표현하기 위해 폰트를 변형하고 추상화했습니다. 그 결과, 마치 암호처럼 보이는 독특한 타이포그래피가 탄생했고, 이는 디자인 전체의 스토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방식은 트랙리스트 디자인에도 적용되었습니다. 휴는 단순히 곡 제목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 자체가 하나의 시각적 언어처럼 느껴지도록 디자인했습니다.

특히 트랙리스트의 글자 배치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트랙리스트의 폰트 디자인은 민들레 씨앗이 흩날리는 모습을 떠올리게 해요.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자연의 느낌과 금속성 소재를 조합해, 디지털과 유기적인 요소를 조화롭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즉, 휴의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은 단순히 읽기 위한 글자가 아니라, 음악과 자연, 그리고 디지털 감성이 어우러진 하나의 예술적 표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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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이 만들어내는 디자인

휴 밀러는 디자인에서 직관과 진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습니다. 그는 디자인 과정을 그림을 그리는 것에 비유하며, “직관, 감정,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타이포그래피를 강력한 스토리텔링 도구로 보았으며, 이를 통해 디자이너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타이포그래피의 매력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소통의 방식 자체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에요.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조용하게, 혹은 일부러 어긋나게 표현할 수도 있죠.” 휴는 이렇게 말하며, 글자의 형태와 배치만으로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디자인 철학은 직관을 믿고, 협업을 소중히 여기며, 과정 자체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런 접근 방식은 의미 있고 감동적인 디자인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창작자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입니다.

결국, 휴 밀러의 SO:LO 앨범 디자인은 단순히 멋진 그래픽이 아닙니다. 음악과 창작자의 메시지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한 결과 탄생한 작품이죠. 그의 혁신적인 디자인 기법, 모든 요소에 담긴 의도, 강한 스토리텔링은 그가 ISTD 국제 타이포그래피 어워드를 수상한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작업은 음악과 환경이라는 주제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히고, 창작자와 청중 사이의 더 깊은 교감을 만들어내는 디자인의 힘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