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 개발에서 아트 디렉션은 게임 세계의 통일된 스타일을 만드는 핵심 과정입니다. 캐릭터, 배경, UI까지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설득력 있는 세계관이 완성되죠. 그중에서도 폰트 선택은 단순히 미적인 장식이 아니라, 시대감과 스토리, 그리고 상호작용의 현실감을 더해 플레이어가 게임에 깊이 몰입하게 만듭니다. 이번 글에서는 폰트가 어떻게 게임의 분위기와 설득력을 높이는지, 시대적 배경·공간적 사실성·시리즈 정체성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참고한 글은 Medium에 실린 《Video Game Typography Part II: Art Direction》으로, 일부 내용을 발췌·편집했습니다.
시대적 기억을 불러내다
2차 세계대전은 게임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입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관련 게임만 100편이 넘으며, 《Call of Duty(콜 오브 듀티)》 같은 슈팅 게임부터 《Hearts of Iron(하츠 오브 아이언)》 같은 전략 게임, 《Company of Heroes(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같은 액션 어드벤처까지 장르도 다양합니다. 이들 대부분이 비슷한 폰트 스타일을 차용하지만, 시대감을 가장 세밀하게 구현한 대표작은 《Company of Heroes 2(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입니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는 PC 실시간 전략 게임으로, UI 곳곳에 치밀한 디테일이 담겨 있습니다. 탄띠 모양의 로딩 바, 훈장 아이콘, 전장 지도, 군용 문서를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전문적인 폰트 디자인과 어우러져 사실적인 전쟁 분위기를 만듭니다.
특히 로딩 화면에 사용된 Hermes 폰트는 1940년대 신문과 출판물에 널리 쓰였고, 당시 군용 문서에도 흔히 등장하던 서체였습니다. 덕분에 플레이어가 임무 브리핑을 읽을 때 Hermes는 단순한 글씨체를 넘어, 시대적 사실성과 전쟁의 긴장감을 함께 전달합니다.
사실적인 공간을 구현하다
Rockstar가 2011년에 출시한 《L.A. Noire(엘에이 느와르)》는 1940년대 로스앤젤레스를 무대로 탐정이 사건을 추적하는 게임입니다. 첨단 얼굴 모션 캡처 기술로 심문 장면의 사실감을 끌어올렸고, 단서와 증거는 플레이어의 수첩에 기록되는데 이때 폰트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모든 기록이 연필로 쓴 손글씨 스타일로 표현되어 몰입감을 높일 뿐 아니라, 단서의 불확실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흐릿한 필체는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혹은 의미 없는 단서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을 드러내죠.
또한 각 사건의 타이틀 디자인은 1940년대 필름 느와르 영화의 오프닝을 그대로 오마주하며, 게임의 미술적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립니다.
시리즈의 정체성을 이어가다
Creative Assembly의 《Alien: Isolation(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 2014)》은 1979년 영화 《Alien(에일리언)》을 직접 잇는 생존 호러 게임입니다. 제작팀은 영화의 비주얼 스타일을 철저히 계승하며 ‘복고적 미래주의(retro-futurism)’ 원칙을 따랐습니다.
영화 속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은 배제하고, CRT 모니터, 저해상도 HUD,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구현해 당시 SF 미학을 그대로 재현했죠.
특히 UI를 위해 Sevastopol이라는 전용 서체를 직접 제작했습니다. 기존 폰트를 변형하는 대신 영화 속 장치의 디테일까지 충실히 살린 것인데, 이는 영화 제작진이 소품을 직접 만들던 태도와도 닮아 있습니다.
여기에 화면 신호 간섭, 잡음, 플리커 같은 세밀한 효과를 더해 저해상도 특유의 SF 분위기를 더욱 설득력 있게 완성했습니다.
결론: 폰트는 몰입감의 열쇠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는 역사적 배경을 살린 폰트 선택으로, 《L.A. Noire》는 디테일한 손글씨 표현으로, 《Alien: Isolation》은 전용 서체 제작으로 각각 몰입감을 극대화했습니다. 이처럼 주제와 세계관이 뚜렷한 게임일수록 폰트는 단순한 글씨체가 아니라, 게임 전체의 미술 스타일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합니다. 결국 폰트는 플레이어를 설득력 있는 가상 세계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도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