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모노타입 CEO 나이난 차코, “AI 시대, 폰트 산업의 미래를 말하다”

AI가 반복적 작업을 돕지만, 진짜 창의적인 결정과 예술성은 여전히 사람에게 달려 있다”

글자의 형태와 언어, 문화의 경계가 점점 넓어지면서 폰트는 이제 단순한 디자인 요소를 넘어 브랜드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 모노타입(Monotype)의 CEO 나이난 차코(Ninan Chacko)와 진행한 단독 인터뷰에서는 폰트가 브랜드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인공지능(AI)이 폰트 제작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 그리고 유료 폰트 및 구독 서비스에 대한 그의 인사이트를 들어봤습니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제 폰트 디자인에도 AI 도구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폰트 산업에는 기대와 함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죠.

폰트는 브랜드의 개성과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중요한 요소지만, 많은 브랜드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작권 문제가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고, 허가 없이 폰트를 사용하는 일도 여전히 흔합니다. 여기에 더해, 무료 폰트나 오픈소스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유료 폰트를 만드는 회사들은 점점 가격을 정하기도,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기도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됐습니다.

25_0a1be5277d_e3d514dfa4.png

모노타입 CEO 나이난 차코는 폰트 산업을 “횡단형 비즈니스”라고 표현합니다. 폰트는 나라나 산업, 회사 규모에 상관없이 누구나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기업이 고객이 될 수 있다는 뜻이죠. 이처럼 시장은 크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폰트 업계는 오랫동안 저작권 침해와 불법 복제로 어려움을 겪어왔고, 최근엔 AI 기술의 빠른 발전이 또 다른 고민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노타입은 단순히 폰트를 ‘파는’ 회사에서 벗어나, 폰트를 쉽게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 중심의 회사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직접 폰트를 디자인하고 저작권을 보유하는 동시에, 기업들이 폰트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 거죠.

그 대표적인 예가 ‘Monotype Fonts’입니다. 이 플랫폼에는 현재 25만 개가 넘는 폰트가 있고, 550개 이상의 언어를 지원합니다. 기업은 이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폰트를 검색하고, 테스트해보고, 라이선스를 구매한 뒤 팀과 함께 공유하거나 배포하는 모든 과정을 한 곳에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차코는 자사의 폰트 플랫폼 ‘Monotype Fonts’를 폰트 업계의 iTunes에 비유합니다. 음악을 편하게 사고 듣게 해준 iTunes처럼, Monotype Fonts도 기업들이 폰트를 쉽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거죠. 이 플랫폼 전략은 그가 2021년 CEO로 취임한 이후 가장 집중해온 방향이기도 합니다. 목표는 단순히 폰트를 ‘파는’ 데서 벗어나, 폰트를 더 가치 있게 만들고 모노타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차코는 기존의 라이선스 방식, 즉 개별 폰트를 따로따로 판매하는 방식이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방식은 창의적인 디자인이 단순한 ‘상품’처럼 취급되기 쉽고, 가격도 낮을 뿐 아니라 불법 복제에도 쉽게 노출된다는 겁니다. 반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면, 폰트를 보다 풍부하고 유기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 더 큰 가치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또 폰트를 새로 디자인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실제 사용자 반응을 확인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미 시장에서 검증받은 인기 있는 폰트를 인수해 폰트 라이브러리를 키우는 것이, 빠르게 성장하기에 더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_800e36227d.png

모노타입은 현재 AI 기술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Monotype Fonts에서는 AI가 폰트 검색을 도와주거나, 잘 어울리는 폰트를 자동으로 추천해주는 기능도 제공하죠. 또 폰트 개발 속도를 높이는 데도 AI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코는 “AI가 반복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은 대신해줄 수 있지만, 진짜 창의적인 결정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가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아무리 카메라 기술이 좋아져도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여전히 사람의 감각과 시선이 필요하잖아요. 디자인도 마찬가지예요. 기술이 사람만의 예술적 감각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디지털화와 글로벌화가 빨라지는 지금, 모노타입의 핵심 미션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CEO로 취임하신 뒤 어떤 전략적인 전환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폰트나 디자인 업계 출신이 아닙니다. 항공우주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그 뒤로 미디어, 출판, 여행, 테크 분야까지 다양한 업종을 거쳤어요. 제 역할은 제가 직접 가장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모노타입과 폰트 산업이 앞으로도 더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전략을 세우는 것입니다.

제가 모노타입에 왔을 때, 폰트 산업은 점점 ‘상품’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였습니다. 폰트 하나하나의 창의적인 가치는 점점 가려지고, 단순히 ‘판매되는 물건’으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폰트의 진짜 가치를 다시 부각시키고, 특히 ‘폰트를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음악 산업의 변화를 보면 이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전엔 CD나 LP를 사서 음악을 영원히 소유했죠. 그러다 MP3 시대가 오면서 불법 복제도 많아졌고, 지금은 대부분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습니다. 처음엔 스트리밍이 잘 될지 확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쓰는 방식이 됐죠.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고, 개인 맞춤 추천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은 음악 자체보다 Spotify나 iTunes 같은 플랫폼의 가치가 더 커진 셈이에요.

폰트도 비슷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예전엔 CD-ROM 같은 물리 매체에 담긴 폰트를 영구 라이선스로 판매했죠. 이 방식은 폰트를 너무 ‘물건’처럼 만들었고, 가격도 낮았어요.

하지만 지금 모노타입은 그런 방식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인기 폰트들의 저작권을 기반으로, ‘Monotype Fonts’라는 플랫폼을 만들었고, 이 플랫폼 안에서 기업들이 폰트를 검색하고, 체험하고, 라이선스를 받고, 배포하고, 팀과 협업까지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이 안에는 모노타입이 직접 만든 5만여 종의 폰트뿐 아니라, 다른 폰트 회사들이 만든 것까지 포함해 총 25만~30만 종의 폰트가 들어 있습니다. 아마존이 자기 상품만 파는 게 아니라 다양한 판매자들이 함께하는 것처럼, 우리 플랫폼도 그런 구조예요.

결국 우리의 전략은 ‘폰트를 판매하는 회사’에서 ‘폰트를 잘 관리할 수 있게 돕는 회사’로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폰트는 단순한 디자인 요소가 아니라, 브랜드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우리 브랜드 폰트를 전 세계에서 일관되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는데, 우리는 그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MT_PDG_N_304_B_Lifestyle_c7f2ea25c0.jpg

Monotype Fonts를 폰트 업계의 iTunes에 비유하셨는데, 이 플랫폼이 산업 변화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즘 산업 전반의 변화 흐름을 보면, 핵심은 ‘풍부한 선택지’입니다. 음악 스트리밍, 뉴스 구독, 온라인 쇼핑처럼, 사람들은 이제 원하는 걸 더 많이, 더 쉽게, 언제 어디서나 이용하길 원하죠. 저희는 이런 접근성과 다양성을 폰트 산업에도 적용하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50개 정도의 폰트만 있다면 이름을 기억하고 찾는 것도 어렵지 않겠죠. 하지만 수십만 종의 폰트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럴 땐 강력한 검색 기능과 AI 추천이 꼭 필요합니다. 저희는 지금 이걸 실제로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어 사용자가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어울리는 폰트는 뭐가 있을까?”라고 자연스럽게 질문하면, 플랫폼이 그 의도를 이해하고 적절한 폰트를 추천해주는 걸 목표로 합니다. AI가 이런 ‘자연어 검색’을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 기술이죠.

이게 바로 저희가 말하는 ‘폰트의 민주화’입니다. 폰트를 전문가만 쓰는 복잡한 도구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폰트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죠.

물론 이런 변화가 항상 모두에게 편한 건 아닙니다. 기존 방식에 익숙했던 분들 중에는 폰트가 여전히 전문가의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산업이 개방되면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자원에 접근하게 되니까, 일부는 자신의 전문성이 줄어든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이 변화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폰트 산업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믿습니다. 더 많은 사람과 기업이 폰트를 쉽게 찾고 잘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결국 산업도 더 크게 성장하게 될 거예요.

최근 모노타입이 해외 인수나 지역 확장에 적극적인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가장 큰 목표는 ‘진짜 글로벌 폰트 리더’가 되는 거예요. 그 말은, 전 세계 모든 언어와 문화를 아우를 수 있는 폰트 자원을 갖추는 걸 의미합니다. 단순히 영어 알파벳(라틴 문자)만이 아니라, 중국어(간체·번체), 일본어, 한국어, 인도어, 아랍어, 히브리어 등 다양한 언어의 폰트를 포함해야 하죠.

그런데 이런 다양한 언어의 폰트를 전부 새로 만들려면 정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AI를 활용한다고 해도, 디자인과 검수에 시간이 꽤 걸리는 건 마찬가지예요.

저는 폰트 디자인을 영화 제작에 비유하곤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배우와 좋은 대본이 있어도, 영화가 흥행할지 알 수 없듯, 멋지게 만든 폰트라고 해도 시장에서 성공할지는 몇 년이 지나봐야 알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미 오랫동안 검증받은 클래식 폰트를 인수하면 훨씬 효율적입니다. 특히 비라틴 문자(비영어권)의 경우, 좋은 폰트 하나가 오랜 시간 사랑받으며 꾸준히 사용되기 때문에, 이런 인수는 라이브러리를 빠르게 넓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죠.

MT_PDG_N_103_Lifestyle_d38950105c.png

또한 서울, 파리,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사무소를 설립한 이유는 현지 시장을 더 잘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해서예요. 현지 고객들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아는 사람들이 직접 그 시장을 다뤄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중국은 처음에 직원이 8~9명뿐이었지만, 지금은 30명 이상이 일하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현지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면, 단순히 언어 문제만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와 비즈니스 방식까지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서 훨씬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요즘 글로벌 폰트 시장은 어떤 흐름을 보이고 있나요?

폰트 시장은 지금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요. 외부 컨설팅 업체와 함께 시장 규모를 분석해봤더니, 현재 약 10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되며 매년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가장 큰 변화는 팬데믹이었어요.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면서 대부분의 브랜드 경험이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옮겨갔죠. 그 결과, 브랜드가 온라인에서 어떻게 보이고, 어떤 인상을 주느냐가 훨씬 더 중요해졌어요. 폰트는 브랜드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서, 기업들이 폰트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겁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흐름은 ‘개인화’예요. 요즘은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경험을 기대하잖아요. 웹사이트나 앱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폰트를 쓰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고, 사용자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죠. 같은 스마트폰을 써도 폰트에 따라 화면 느낌이 달라지니까요.

그리고 이제는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태블릿처럼 다양한 화면 크기와 해상도가 있기 때문에, 폰트는 보기 좋아야 할 뿐 아니라 어떤 화면에서도 또렷하게 잘 보여야 합니다. 선명하고 일관된 폰트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죠.

최근엔 온라인 사기도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브랜드의 글자 모양 하나만 달라도 의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브랜드의 시각적 일관성이 훨씬 더 중요해졌어요. 실제로 디즈니나 P&G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폰트 하나에 수억, 많게는 수십억 달러까지 투자할 정도예요. 그만큼 폰트가 브랜드 신뢰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죠.

이런 흐름 덕분에 폰트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고, 저희 모노타입도 그 영향을 직접 체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AR, VR 같은 기술이 더 일상화되면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서 또렷하게 보이는 폰트의 중요성은 더 커질 거예요. 결국 폰트는 단순한 디자인 요소를 넘어, 새로운 기술 환경에서 브랜드를 돋보이게 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Wechat_IMG_4136_868878f85e.jpg

디지털 시대에 폰트 디자인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디지털 전환이 가져온 새로운 폰트 수요나 트렌드는 어떤 게 있을까요?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폰트에 대한 수요도 계속 늘고 있어요. AI, AR, VR 같은 신기술이 폰트를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앞으로 폰트를 쓸 수 있는 환경이 훨씬 더 다양해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만큼 폰트가 필요한 곳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스트리밍 콘텐츠의 급증이에요. 요즘은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자막을 켜고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 자막에도 당연히 폰트가 사용되는데, 잘 읽히는 폰트를 쓰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로 자막을 보기 때문에, 자막용 폰트는 단순한 디자인 요소가 아니라 시청 경험 전체에 영향을 줘요. 실제로 저희는 넷플릭스와 협력해서 자막 폰트의 가독성을 높이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또 하나 중요한 트렌드는 ‘개인화’예요. 지금은 콘텐츠도 많고, 사용자 취향도 다양하잖아요. 웹사이트나 앱에서 어떤 폰트를 쓰느냐에 따라 그 서비스의 분위기나 인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더 많은 기업들이 자기 브랜드나 서비스에 맞는 폰트를 찾으려고 해요.

결국 콘텐츠가 많아지고, 선택지도 넓어지고, 사람마다 원하는 경험이 다르다 보니, 폰트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브랜드나 서비스의 개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어요. 이런 변화 덕분에 폰트 시장도 계속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 흐름은 이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Text_overlay_on_Shorts_e23cfd8385.png

요즘 AI가 디자인을 포함한 거의 모든 분야에 들어오고 있는데요, 폰트 디자인과 제작에는 어떤 영향을 줄 거라고 보시나요?

AI는 잘만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되지만, 무조건 좋은 것도, 무조건 위험한 것도 아닙니다. 결국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어요. 저는 전체적으로 AI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폰트 디자인은 결국 ‘사람의 감정과 개성’을 담는 작업이기 때문에, AI가 사람을 완전히 대신하긴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AI는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을 빠르게 처리하는 데 정말 유용합니다. 예를 들어 간체 중국어 폰트를 하나 만들려면 약 4만 자를 그려야 해요. 보통 디자이너 몇 명이 1~2년 동안 작업해야 하죠. 그런데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이 과정을 훨씬 단축할 수 있어요. 덕분에 디자이너는 더 창의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New_Monotype_Office_03_gallery_9710bd83a2_9557c5eedd.jpg

하지만 폰트 디자인의 핵심은 여전히 사람입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감성과 창의력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의료 분야처럼 정답이 있는 곳에서는 AI가 인간을 능가할 수 있지만, 폰트처럼 정답이 없는 창작 영역은 다릅니다.

제가 자주 드는 예가 사진이에요. 아무리 카메라가 좋아도, 정말 멋진 사진은 결국 사람이 찍습니다. 사람의 눈, 감각, 구도, 분위기를 보는 힘이 있어야 좋은 사진이 나오듯, 폰트도 마찬가지예요. 기술은 도와주는 수단일 뿐, 진짜 예술성과 개성은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그럼 AI는 결국 폰트 산업에서 ‘보조 역할’을 한다는 말씀이신 거죠?

맞아요. AI는 어디까지나 생산성과 효율을 높여주는 ‘도구’일 뿐이에요. 예전에도 컴퓨터로 만든 예술 작품들이 있었지만, 그게 피카소나 미로처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예술만큼 감동을 주진 않았잖아요. 마찬가지로 폰트 디자인도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AI는 그 사람의 작업을 더 쉽고 빠르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모노타입은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기술 중 정말 세상을 바꿨다고 느낀 건 두 가지예요. 하나는 인터넷, 또 하나는 생성형 AI입니다. 사실 생성형 AI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1~2년 사이에 대중적으로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어요. 저희도 지난 16개월 동안 이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고, 앞으로 AI가 폰트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사람들이 폰트를 찾을 때 꼭 전문 용어나 디자인 지식을 몰라도 돼요. “중국 서예 느낌의 박물관 포스터에 어울릴 만한 폰트 알려줘” 같은 식으로 자연스럽게 물어보면, 저희 AI 시스템이 그 의도를 이해하고 적절한 폰트를 추천해줍니다. 예전엔 이런 질문을 하려면 폰트 이름이나 스타일을 정확히 알아야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죠. 이런 방식이야말로 AI가 진짜로 유용하게 쓰이는 예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폰트 조합 추천’ 기능이에요. 디자이너들이 웹사이트나 앱을 만들 때 제목과 본문에 서로 다른 폰트를 쓰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모든 폰트가 잘 어울리는 건 아니에요. 저희 AI는 이런 조합이 자연스럽고 보기 좋은지 판단해서, 어울리는 폰트들을 추천해줍니다.

결국 AI는 디자이너가 더 빠르게, 더 쉽게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예요. 하지만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의 감각과 선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아요.

tutieshi_640x360_8s_1_c621110a63.gif

저희는 ‘Portrait’라는 AI 도구도 개발했습니다. 이 도구는 이미지 안에 있는 텍스트를 정확하게 지우고, 원하는 글꼴과 스타일로 다시 넣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예를 들어 Stable Diffusion이나 Midjourney 같은 이미지 생성 툴은 그림은 잘 만들지만, 그 안에 들어간 텍스트는 종종 오타가 있거나 수정이 거의 불가능하죠. 글자의 폰트, 크기, 색상도 마음대로 바꾸기 어렵고요.

Portrait는 이런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미지 속 기존 글자를 자연스럽게 지운 뒤, 사용자가 고른 폰트(Gotham, 14pt, 굵게, 원하는 색상 등)로 깔끔하게 다시 넣어주는 거예요. 덕분에 이미지 안에서도 완성도 높은 타이포그래피를 구현할 수 있죠.

또한 AI는 폰트 개발 속도도 크게 높여줍니다. 영어 같은 라틴 문자는 글자 수가 적어서 AI의 도움 없이도 만들 수 있지만, 한자처럼 수만 자가 필요한 비라틴 문자에서는 AI가 정말 큰 도움이 돼요. 사람이 수년 걸릴 일을 AI는 훨씬 빠르게 처리해줄 수 있거든요.

폰트 라이선스는 복잡하고, 불법 복제 문제도 많잖아요. 폰트 저작권 보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정말 오랫동안 폰트 업계가 고민해온 부분이에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중국은 오히려 폰트 저작권 면에서는 꽤 유리한 나라예요. 중국에서는 글자의 ‘모양’ 자체가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는 폰트의 생김새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에요.

2_Helvetica_Now_e6f4442486.png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누군가가 Helvetica처럼 생긴 폰트를 거의 똑같이 만들어도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습니다. 대신 “Helvetica”라는 이름은 사용할 수 없어요. 그건 저희가 등록해 둔 상표이기 때문이에요. 피카소 그림을 흉내 내는 포스터는 많지만, 진짜 원본은 단 하나뿐이잖아요. 폰트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저희는 상표를 중요한 보호 수단으로 보고 있어요. 상표는 계속 갱신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나라에서 폰트의 창의적 디자인 자체를 저작권으로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가길 바라고 있어요. 그건 단순한 법 문제가 아니라, Adrian Frutiger(아드리안 프루티거) 같은 뛰어난 디자이너의 작품과 노력을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Adobe Fonts나 Google Fonts처럼 무료 폰트가 많은데요, 이런 경쟁 속에서 모노타입만의 차별화는 뭐라고 보시나요?

사실 Adobe나 Canva 같은 회사는 저희 입장에선 경쟁자가 아니라 파트너예요. 저희는 Adobe Creative Cloud나 Canva에 수천 종의 폰트를 라이선스하고 있고, 실제로 Canva 사용자들이 저희 폰트로 만든 디자인이 10억 건이 넘어요.

무료 폰트는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하지만 그만큼 브랜드마다 개성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어요. 예를 들어 동네 세탁소와 글로벌 브랜드가 같은 폰트를 쓴다면, 차별화가 안 되겠죠. 브랜드는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가 바로 폰트예요.

Frutiger(프루티거)처럼 오랜 시간 사랑받는 고급 폰트는 단순히 예쁜 글씨가 아니라, 브랜드의 신뢰감과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희는 그런 고품질 폰트를 제공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고, 그게 바로 모노타입의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Wechat_IMG_4168_d0e9514db3.jpg

요즘 글로벌 폰트 산업은 어떻게 발전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앞으로 가장 중요한 트렌드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지금도 폰트 산업이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점은, 폰트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 졸업하자마자 자신만의 폰트 회사를 차릴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만큼 폰트 시장은 진입 장벽이 낮고, 폰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이 업계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물론 경쟁은 치열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디자인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건 산업 전체에 굉장히 긍정적인 신호예요.

특히 눈에 띄는 건 신흥 지역의 성장입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폰트 시장 중 하나예요. 보유한 폰트 수나 제작량 모두 세계 10위 안에 들 정도입니다. 브라질도 마찬가지로 폰트 디자인이 굉장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이처럼 폰트 산업은 전 세계에서 점점 더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글자에 감정을 담고,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거든요. 폰트는 그런 ‘표현의 도구’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산업이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고, 새로운 기술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더 발전해 나갈 거라고 믿습니다.

*이 기사는 중국 제일재경(第一财经)에서 제공되었으며, 저자는 덩이윈(邓依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