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Creative Bloq의 「Why typography is the fashion industry's secret weapon」에 실린 모노타입의 찰스 닉스 인터뷰를 바탕으로 핵심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모노타입(Monotype)의 수석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찰스 닉스(Charles Nix)는 패션 브랜딩에서 폰트가 지금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패션에서 타이포그래피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저는 모노타입의 수석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찰스 닉스를 만났습니다. 2010년대 패션 업계의 뜨거운 화두였던 그레이트 산스 스케어(Great Sans Scare)부터 AI가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미치는 영향까지, 그는 패션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습니다.
찰스 닉스는 모노타입의 수석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디자이너, 타이포그래퍼, 교육자입니다. 그는 헬베티카 나우(Helvetica Now)의 리드 디자이너로 활동했으며, 이후 모노타입 라이브러리(Monotype Library)를 위해 여러 인기 서체를 디자인했습니다.
패션 브랜드는 지난 세월 동안 타이포그래피를 어떻게 활용해 왔을까요?
패션 브랜드의 역사는 제각각입니다.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브랜드도 있고, 수십 년 동안 성장해 온 브랜드도 있습니다. 최근에 등장한 신생 브랜드도 있죠.
어떤 브랜드는 오랜 유산을 이어받았고, 어떤 브랜드는 지금 새로운 유산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직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또 어떤 브랜드는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브랜드의 존재감을 처음부터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2010년대에는 그레이트 산스 스케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많은 패션 브랜드가 로고를 단순한 산세리프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개성 있는 로고를 버리고 비슷한 형태의 산세리프 로고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브랜드들이 모두 비슷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찰스 닉스는 이 현상이 실제보다 더 크게 해석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팬데믹 이후 대부분의 브랜드는 디지털 환경에 더 잘 대응해야 했습니다. 모바일 화면과 온라인 플랫폼에서 더 선명하게 보이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했죠. 그래서 많은 브랜드가 시각적 표현을 단순화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를 두고 브랜드만의 개성이 사라진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는 브랜드 정체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 맞춘 실용적인 대응에 가까웠습니다.
패션 업계에서 로고와 라벨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패션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시즌마다 새로운 컬렉션이 나오고, 트렌드도 계속 바뀝니다. 하지만 로고는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유지됩니다. 그래서 로고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약속을 상징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로고와 타이포그래피는 브랜드의 닻과 같습니다. 제품과 트렌드가 계속 바뀌더라도 브랜드를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패션 시장은 매우 넓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럭셔리 브랜드부터 새롭게 성장하는 스포츠웨어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까지 다양한 브랜드가 함께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패션 업계 전체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적인 타이포그래피 흐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블랜디피케이션(Blandification)입니다. 브랜드들이 점점 비슷한 디자인을 사용하면서 개성을 잃어간다는 비판을 담은 표현입니다.
하지만 실제 사례를 보면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와 헤리티지 브랜드는 여전히 자신들만의 독특한 레터링과 로고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일부 브랜드가 리브랜딩 과정에서 논란을 겪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각 브랜드의 시각적 유산은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찰스 닉스는 여러 브랜드의 산세리프 로고를 한 장에 모아 보여주며 블랜디피케이션을 설명했던 유명한 그래픽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그 그래픽이 일종의 디자인 비평적 맥거핀(McGuffin)이라고 말합니다. 맥거핀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장치이지만, 실제 핵심은 아닐 수도 있는 요소를 뜻합니다.
즉, 그 그래픽은 매우 설득력 있어 보였지만 특정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선택된 사례들을 모아놓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자료를 모으면 블랜디피케이션 대신 미뉴멘털리즘(Minumentalism)이라는 전혀 다른 흐름이 등장하고 있다는 주장도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래픽 자체보다 그 안에 어떤 사례를 선택해 넣느냐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타이포그래피가 혼자 의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아디다스(Adidas)가 상징적인 브랜드인 이유는 단순히 특정한 산세리프 서체를 사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은 그 글자 형태를 아디다스라는 이름과 연결해 기억해 왔습니다.
즉, 브랜드 이름과 타이포그래피가 오랜 시간 함께 축적되면서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글자 모양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글자와 연결된 경험과 감정, 문화적 기억까지 함께 떠올립니다.
AI에 대한 그의 시각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문제가 AI 자체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현재의 AI 환경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대규모 언어 모델(LLM) 인터페이스는 매우 표준화된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이를 웹 초기 시절에 비유합니다.
당시에는 웹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폰트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가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현재 AI 인터페이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브랜드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온 고유한 타이포그래피와 시각적 목소리가 충분히 드러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찰스 닉스는 이를 "모든 아이스크림이 바닐라 맛뿐인 세상"에 비유합니다.
브랜드들은 수십 년 동안 자신만의 타이포그래픽 목소리를 만들어 왔습니다. 어떤 브랜드는 우아함을, 어떤 브랜드는 실험성을, 또 어떤 브랜드는 친근함을 표현해 왔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AI 인터페이스에서는 이런 차이가 쉽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브랜드가 같은 화면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앞으로 타이포그래피가 의류 위에서 더 의미 있게 활용되기를 기대합니다.
라민 바디안 쿠야테(Lamine Badian Kouyaté)나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의 작업, 그리고 많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에서 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이들의 작업에서 타이포그래피는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태도를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역할을 합니다.
타이포그래피는 의류보다 먼저 등장합니다. 캠페인보다 먼저 등장합니다. 컬렉션보다 먼저 등장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패션 디자이너 친구와 나눈 대화를 소개했습니다.
새로운 브랜드를 준비 중인 그 친구에게 그는 "패션 로고는 브랜드의 약속"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 제품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더라도 로고는 이미 소비자에게 기대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로고는 이 브랜드가 어떤 세계관을 보여줄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그래서 그는 로고가 단순히 브랜드에 붙는 장식 요소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로고는 브랜드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브랜드의 약속이 먼저이고, 그 약속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이 바로 타이포그래피입니다.